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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역사, 애니메이션 발전 과정, 국내외 애니메이션

사진술의 발명과 최초의 영화

사진술의 발명과 최초의 영화

사진술의 발명과 최초의 영화

사진술의 발명은 영화의 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죠. 1823년에 프랑스의 N. 니에프스와 다게르 등에 의해서 사진술이 발명되었는데요. 이어서 1878년에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촬영한 말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말이 달리는 모습을 12대 또는 24대의 사진기를 이용해서 이것들을 1피트 간격으로 늘어놓고 말이 지나갈 때마다 순차적으로 촬영해서 총 24장의 달리는 말의 모습을 촬영하였습니다. 1872년 당시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였던 리랜드 스탠퍼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 사람이 지인들과 말이 달릴 때 말발굽이 4개가 동시에 땅바닥에서 떨어진다, 안 떨어진다. 이걸 가지고 논쟁을 하게 되었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이 달릴 때 말발굽 4개가 동시에 땅에서 떨어질 거 같아요? 아니면 하나라도 붙어있을 거 같아요? 이 스탠퍼드는 4개의 말발굽 모두가 땅에서 떨어진다고 확신하였고요. 그래서 내기를 했대요. 그래서 이 사진작가인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를 고용했고요. 마이브리지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24대의 사진기를 이용해서 말을 연속 촬영하는 장치인 주 프락시스 코프라고 부르는 일종의 영사기를 새로 발명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최초의 모션픽처로 대중에게 보여주게 되었죠.

마이브리지의 연구

원래 마이브리지는 원래 영국에서 출생해서 미국에서 풍경이나 건축물 사진을 찍던 사진작가였는데요. 후에는 사람이나 동물의 연속동작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어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비탈길을 걸어가는 여인의 동작이라든지 어린아이가 층계를 올라가는 연속된 동작을 찍은 것도 있어요. 남자들이 대장간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은 것도 있는데, 대부분 누드 차림으로 찍었죠. 왜냐하면, 그래야 그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이미지가 수록된 여러 버전의 책이 있는데, 지금도 판매되고 저도 몇 개나 가지고 있죠. 이 책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나 아니면 움직임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 합성기술, 모션픽처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사진의 개척자이자 최초의 타임랩스 영상을 만든 거죠. 타임랩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저속촬영을 해서 정상보다 빨리 상영하는 특수영화 기법인데요. 약간 찰리 채플린 시대에 나오는 움직임 같은 거죠. 때마침 1888년에 조지 이스트만은 종이를 바탕으로 한 필름을 완성하여 코닥이라는 이름을 등록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여러분은 이 코닥이라는 이름을 잘 못 들어봤을 수도 있는데요. 필름이 들어간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이 코닥이라는 필름 상품은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빛을 이미지 센서로 받아들여서 디지털 정보로 기록하는,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남기는 좋은 장치였죠. 아날로그 시대에는 우리가 멋진 곳에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어도 필름을 사진으로 인화하기까지는 도대체 어떤 사진을 우리가 찍었는지 볼 수도 없었고요. 간혹 필름을 잘못 넣어서 사진을 찍으면, 인화한 후에 '이게 다 망쳤구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가격이 싸지도 않아서 1장의 사진을 찍더라도 굉장히 신중해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디지털 사진에 비해서 많이 불편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해준 고마운 장치였죠. 이제는 필름 카메라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카메라 시대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아주 친밀하게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죠.

에디슨의 영사기

그럼 다시 영사기 이야기를 계속해볼게요. 여러분이 잘 아는 발명왕. 그러면 누가 있죠? 에디슨이죠. 1891년도에 약 13초 정도의 영상을 볼 수 있는 키네토그래프를 발명했어요. 역시 에디슨이죠?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으로는 전구, 축음기, 영사기, 냉장고, 세탁기 등 2,300여 개가 넘는 발명품들이 있는데요. 제가 박물관에 가서 내용을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냉장고나 세탁기 등은 사랑하는 사람, 즉 자신의 아내를 편리하게 해주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데서 전 정말 감동받았어요. 하여튼 에디슨이 만든 키네토그래프는 '들여다보기 영화'로 한 번에 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었어요. 굉장히 흥행이 있었죠. 인기가 좋았죠. 그런데 너무 무게도 무겁고 한 사람이 한 번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어요. 이러한 이유로 최초의 영화 타이틀은 촬영기와 영사기를 활용한 뤼미에르 형제가 거머쥐게 됩니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역사적인 행사를 개최하게 됩니다. 그들이 발견한 과학적 업적이면서 새로운 시각예술 매체인 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시네마토그래프를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영화가 세계를 기록하고 상상하는 기계장치로 태어나게 된 것이죠. 이때 상영된 최초의 영화는 단 1프랑을 받고 20여 분간 상영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대중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는 다큐멘터리 형식이었어요. 거기에는 아직까지 주인공도 없고 촬영 기법도 개념도 없는, 또 편집 기술이 들어가지도 않는 영화였죠. 후에 사람들은 그 짤막한 단편들에게 이름을 붙였는데요. '열차의 도착'이라든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물 뿌리는 사람들'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 또는 공장에서 퇴근이란 제목의 영화는 말 그대로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촬영한 것이에요. 또한 이 '열차의 도착'이란 50초 정도의 짧은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은 스크린 속에서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왜 안 그렇겠어요.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영상을 보고 실제 기차라고 착각하고 깜짝 놀란 거죠. 잔상 현상을 활용한 움직이는 그림과 사진기의 발명이 한데 결합되어서 카메라가 생겨나고요. 환등기가 발전하여서 여기에 전기의 발명과 결함 됨으로써 영사기가 만들어지고 셀룰로이드 필름이 발명됨으로써 오늘날 영화의 초석이 된 것입니다. 사실 최초의 영사기는 에디슨이 발명했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용이어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는 못했어요. 뤼미에르가 최초의 영사기를 발명한 사람으로 불리지만, 현대 디지털 시대에는 젊은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기보다는 개인용으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서 영화 관람하기를 선호한다는 아티클을 제가 보았는데요. 이는 제 생각에 에디슨의 개인용 영화 관람 개념을 새롭게 부활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크기는 다소 거대했지만, 어쩌면 에디슨은 21세기 맞춤형 영사기를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